유머 잔혹한 과학실험 이야기 <1> 절망의 구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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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미국,
심리학자 해리 할로우는
훗날 애착실험이라 불리는 유명한 실험을 한다.
이 실험은
새끼 붉은털원숭이를 어미랑 분리시킨 후
천으로 덮인 인형
이 둘 중 어느쪽을
새끼가 어미로 선택할까 하는 실험이었다.
백문이 불여일견
영상으로 집적 봐보자 (25초 ~1분 10초)
영상에서처럼 새끼는
우유를 먹을 때만 철사 엄마에게 가고
대부분의 시간을 헝겊 엄마에게 붙어있었다.
새끼에겐 허기를 채우는 것보다
어미와 비슷한 포근한 감촉이 중요했던 것이다.
아이에게 애정과 스킨십이 필요하다는 건
오늘날엔 상식이지만
당시에는 꽤 신선한 주장이었다.
당시 부모들은 스킨십을 자제해야 한다고 믿었고
(그래야 독립심이 강한 아이로 자란다고 생각했다)
심리학계에선 모유수유를 통해 아기가 엄마와 애착을 형성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할로우의 실험은 반대로
모유수유보다 스킨십이 중요하다는 걸 밝혀낸 것이다.
사랑의 본질(the Nature of Love)이란 제목으로
나온 이 실험 논문은
4000회 이상 인용되며
심리학 서적에서 빠지지 않는 주요 연구로 남게 된다.
하지만
할로우가 뒤이어 한 실험들이
광기와 잔혹함으로 얼룩져 있다는 건
그리 알려져 있지 않다.

캐터필트가 튀어나와
새끼를 떨어뜨렸고
심지어 가시가 튀어나와
고통 때문에 엄마 인형을 안지 못하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이 악마 엄마에 대한 새끼의 반응은 처절했다.
새끼는 공포와 고통을 느끼면서도 엄마 인형을 포기하지 않았다.
장치가 멈추고 잠잠해지면 다시 다가가 인형을 안았다.
버림받고 고통을 느껴도 포기할 수 없을 만큼
접촉에 대한 욕구가 강했던 것이다.
새끼 원숭이가 생각보다 쉽게 포기하지 않자
할로우는 보다 강력한 충격을 주는 장치를 만들기로 한다.
절망의 구덩이(Pit of despair)라 이름 붙은 이 장치는
사람으로 따지면 독방에 감금하는 장치이었지만
그 환경은 훨씬 혹독했다.
벽은 깔대기처럼 기울어진 구조여서
기어올라도 다시 아래로 미끄러졌고
운 좋게 올라간다 해도 뚜껑으로 덮여있어서 탈출은 불가능했다.
장치에 감금된 원숭이는
처음 1-2일은 탈출을 시도했지만 소용없었고
이내 곧 비좁은 바닥에 웅크린채 가만히 있었다.
이렇게 좁은 공간에 갇혀
어미의 애정도, 다른 원숭이와 사회적 접촉도,
심지어 빛도 차단된 환경에서 30일~1년간 격리되는 실험은
새끼 원숭이의 정신을 완전히 망가뜨리기에 충분했다.
장치 밖으로 나온 원숭이는
몸을 웅크린채 무기력하게 시간을 보냈다.
스스로를 껴안거나, 사육장을 반복해서 빙빙도는 이상 행동도 보였다.
그리고 실험한 12마리 원숭이 중 2마리는
장치에서 나온 후 음식을 거부하다가 거식증으로 죽었다.
지나치게 겁을 먹거나
(다른 원숭이에게 괴롭힘 당하기 일쑤였다)
공격성을 자제하지 못했다.
(자기보다 훨씬 덩치 큰 수컷을 공격하는 경우도 있었다)
할로우의 말을 인용하자면
“그들의 사회적 노력은 애처로웠고 성적인 노력(짝을 맺으려는 노력)은 처량했다.”
그리고 실험은 여기서 끝이 아니였다.


이러한 할로우의 실험은
당시 기준으로도 윤리적인 문제가 많았고
많은 비난을 받았으며
70년대 미국에서 동물인권운동이 활발해진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사랑의 중요성을 강조하던 심리학자가
어째서 잔혹한 매드 사이언티스트로 변한걸까?
어쩌면 그 진실은 사람들의 비난을 받으며
쓸쓸히 죽은 할로우만 알고 있지 않을까?
라고 끝내기엔 섭섭하고
사실 여기엔 숨겨진 배경이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할로우의 잔인한 실험들은
우울증 치료를 위한 기초 연구였다.
뜸금없는 소리 같지만
처음부터 차근차근 짚어보자
원숭이 엄마 인형 실험을 발표한 후
할로우는 순식간에 유명한 학자가 된다.
그리고 할로우는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계속 좋은 연구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린다.
이 압박감은
1967년, 미국 과학자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상인
미국 국가 과학상 (National Medal of Science)상을 받으며
절정에 달했고
같은 해 아내가 암까지 걸리자
할로우는 우울증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증세는 점점 더 심해져
수면제로 자살을 시도하다 2차례 응급실에 실려갔고
결국 이듬해, 정신병동에 2달간 입원까지 했다.
병동에서 치료를 받으며
할로우는 우울증이 생각 이상으로 고통스럽고
그에반해 병원의 치료법은 부족하다는 걸 느낀다
당시 항우울제는 효능에 비해 부작용이 심했고
전기경련요법(ECT)처럼 새로 도입된 치료법은 효과 검증이 부족하던 때였다.
이에 할로우는 자신이 집적 우울증 치료법을 연구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으니
우울증 치료법을 실험하려면
먼저 우울증에 걸린 실험동물이 필요했다.
사회적 접촉을 차단해
우울증에 걸리게 하기 위한 장치였던 것이다.
이렇게 "환자 원숭이"들이 확보되자
할로우는 이들을 치료하는 시험을 한다.
그가 사용한 방법은 생후 3개월의 어린 원숭이를 치료사로 붙여주는 거였다.
어린 원숭이를 사용한 건 아직 어려 공격성이 없고
(비슷한 또래 원숭이를 쓰면 괴롭혔다)
어미에게서 떨어지면, 어미 대신
주변의 다른 원숭이를 안는 행동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실험이 상당히 비윤리적이긴 했지만
오히려 그 끔직한 점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바가 있다 생각한다.
관계의 단절과 고립이
사람을 얼마나 잔인하게 망가뜨리는지
누군가의 따뜻한 포옹과 손길로
회복될 수 있는지를 말이다.
엄마와 떨어지자
인형을 엄마처럼 껴안던 새끼 원숭이처럼
사람도 무언가 대체제를 통해
그 허전함을 채우고 싶어하는게 아닐까?
그만큼 관계의 욕구는 중요하고 강력한 것 같다.
## 뒷 이야기 ##
1 심리학은 제 전공이 아니라서 부정확한 내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있다면 댓글로 지적해주세요.
2 할로우 본인도 실험의 잔인성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치료법 개발을 위해선 용인될 수 있다고 생각한 듯합니다.
"몇몇 실험은 잔인한 면이 있지만, 10마리 원숭이의 희생으로 100만명의 아이들을 치료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우울증에 걸린 원숭이를 성공적으로 재활시켰습니다. 이 기술들은 인간에게도 적용할 수 있을 겁니다. "
1978년 The Capital Times에 기고한
할로우의 글 (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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